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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7-21 00:14
“큰 별이 떨어지다” - 고 이병규목사님을 회고하며....
 글쓴이 : Eric
조회 : 4,539  
“큰 별이 떨어지다” - 고 이병규목사님을 회고하며....
성경 전체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총 66권]까지 강해서를 출판한 한국 기독교 역사의 신학자나 목사는 단 2-3 명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다. 이중 한분이 이병규목사다. 우리 동부장로교회가 소속된 한국 교단의 시작이며, 최고 어른이다. 어제 2014년 7월 20일, 오전 0시 14분[한국시간], 어르신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으로 가셨다.

  우리 교회에서 사용하는 ‘바른 성경’은 한국 보수 교단들이 모여 성경 원어에 가장 가깝고 문자적으로 정확하면서 현대 한국 표준어로 번역한 성경이다. 이 성경번역사업을 위해 한국 보수 교계의 리더로서 지난 20 여 년 동안 번역/편집 학자와 위원 모임을 섬기며 물심양면 지원하고 이끌어 오셨다. 또한 한국 문교부 인가 계약신학대학원[경기도 광주 소재]을 설립하여 수많은 신학도와 교역자를 양성하셨다. 이 신학교의 여러 특징 중 성경 전체를 보수적 정통교리로 가르치는 것과, 전 신학생이 장학생으로 학비 없이 공부하는 것이 특히 유명하다. 고 이병규목사는 한국 교계 ‘보수신앙의 기둥’으로 인정받은 이 시대의 큰 별이셨다. 고인의 신앙과 가르침 아래 그리스도의 종으로 복음의 일을 하는 국내외 교역자가 수 천 명이요, 성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고인은 1924년 평양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1948[?] 월남하기까지, 평양에서 전도사로 교회를 시무하기도 했다. 공산주의 정권 북한은 1948년 11월 3일, 주일, 국민투표를 하도록 공포했다. 교회를 박해하고자 고의적으로 주일을 택한 것이다. 전도사 시절 목숨을 걸고 그는 주일을 거룩히 지키도록 가르치고 교인들이 투표에 참석하지 않도록 앞장서다가 붙잡혀 감옥에 들어가 고난을 받기도 하셨다. 출옥 후 월남하여 고려신학교[제 7기 졸업]를 마치고, 6-25 전쟁 후, 서울로 올라와 종로구에 있는 명륜교회를 개척하게 된다. 당시 매주 월요일 오전 몇몇 신학생과 교역자 대상 성경공부를 시작했는데, 입소문이 퍼지면서 각 교단 교파에서 수 십 명, 수 백 명이 모이는 모임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모임이 기초가 되어 현 교단이 형성되고, 신학교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이 초창기 시절 소인의 부모가 명륜교회에 출석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1963년 출생과 함께 소인은 명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자라게 된다. 당시 담임목사였던 고인은 바르고 정직하게 살라하여 正梧정오 이름을 지어주셨다.

소인의 신앙과 신학사상의 기초는 고 이병규목사님에게서 전적으로 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배우고 가르치는 ‘말씀중심의 신앙’
2]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기를 목숨까지 내놓는 ‘순교의 신앙’
3] 살아계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신앙’
4]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본주의 신앙’을 어릴 적부터 소인의 심령에 가르쳐주셨다.

많은 이의 영원한 믿음의 스승되신 고인은 우리 달라스동부장로교회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 우리 달라스교회 개척을 계획하고, 교역자를 파송해 주셨다. 1990년 7월의 일이다. 소인의 부친 김세빈목사를 파송하고 시무하던 창광교회에서 달라스교회의 복음사역을 위해 약 $20,000 선교헌금을 보내 주셨다. 그 외 교단 산하 여러 교회에서 선교헌금을 하도록 적극 협력하여 약 $100,000 지원을 더 받기도 했다. 또 친히 예닐곱 번 달라스교회를 위해 친히 오셔서 사경회를 인도하고 많은 은혜를 주셨다. 이 모든 것이 오늘날 달라스장로교회가 있기 된 기초와 씨앗이 된 것이다.

우리 시대의 큰 별이 떨어졌다. 일제 억압 아래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키며, 북한 공산주의의 무서운 박해에도 불구하고 순교의 신앙으로 한국 교회 역사 속에 믿음의 영웅으로 인정받던 대 선배가 우리의 곁을 떠났다. 한 시대가 저물었다. 오늘날 세계적 위상을 떨치는 한국 교계의 기초가 된 순교적 신앙의 선배들 세대가 다 저물었다. 오직 그들의 위대한 믿음의 유산만이 우리에게 남았다. 과연 과거 역사 속의 이야기인가, 오늘도 지어져가는 신앙 유산의 연속인가? 고인의 소천은 다음 세대의 새벽별이 떠야할 때가 왔음을 알리는 경종은 아닐까? 아버지여, 부디 평안히 주님의 품에 쉬소서!

“그러므로 이처럼 많은 증인들이 구름같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경주를 경주하자”[히브리서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