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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3-23 05:22
자식 눈치를 보는 부모
 글쓴이 : 담임목사
조회 : 4,555  
“자식 눈치를 보는 부모”

“목사님, 우리 아들 게임 그만 하라고 말해주세요!” “목사님, 어른을 보면 인사하는 기본예의를 교회에서 가르쳐야지 요즘 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습니다!” “제가 무슨 말만 하면 잔소리한다고 달려드는데, 우리 딸에게 전화 짧게 하라고 야단쳐주세요!” 요즘 어느 교회에서나 들리는 부모의 도움요청이다. 특히 엄마가 자주 호소한다. 평상시 교육에 무관심하던 아빠가 한번 나서면 고함과 함께 애들에게 상처만 남겨 준단다. 골치만 더 아프게 한단다. 결국 중간에서 아이 눈치 보고 또 아빠 눈치 보는 엄마가 많다. 이 정도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자식이 더 심하게 반항할까 봐, 집을 나갈까 봐… 자식 눈치를 보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아빠 앞에서 자식을 감싸주는 엄마, 자식에게는 아빠 대변인이 되는 엄마는 꽤 괜찮은 편이다. 어떤 엄마는 남편이 못 채워주는 사랑과 외로운 공간을 자식을 통해 채우려고 한다. 자식을 엄마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빠를 왕 따 시킨다. 교육은 원하는 대로 자식 비위를 맞추는 것이 된다. 아이가 엄마 좋아하는 모습에 행복함을 느끼며 불만족한 부부생활을 극복해 간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집안의 왕’으로 군림하게 되고, 그렇게 자라 사춘기가 되면 부모는 자식으로 인해 상처받기 시작한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에 익숙한 자식을 바르게 지도할 ‘교육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더 큰 사고 칠까 봐, 집 밖으로 뛰쳐나갈까 봐, 공부에 지장 될까 봐, 부모 품에서 멀어질까 봐…. 자식 눈치 보며 사는 부모가 적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어떻게 할까?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인가? 먼저, 오늘날 교육의 실패는 ‘교육은 부모의 몫이다’는 기본 도리와 책임을 망각한 부모에게 있다. 자녀의 예의범절은 부모가 매일 집에서 가르쳐야 생활화 된다. 교회가 할 일이 아니다. 정직과 바른 인격 형성은 자식의 마음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아는 부모가 어릴 적부터 생활 속에서 보여주며 가르쳐야 한다. 부모가 가정교육을 시키는 것이 순리며 정석이다. 하나님의 명령이다. 자녀의 구원문제, 신앙 또한 교회의 책임에 앞서 먼저 부모의 몫이다. 교회는 그런 교육이 가정에서 이루어지도록 부모를 가르쳐야 한다. 교회의 교육 시스템과 철학 또한 부모교육을 통해 가정에서 신앙교육이 자녀에게 이루어지도록 재정리 되어야 한다. 부모가 책임지고 자녀에게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성경의 원칙이다. 일주 한 두 번 만나는 교회생활로 온전한 신앙과 인격으로 자식이 자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제쳐놓고 구약의 선지자, 제사장, 왕, 랍비, 신약의 사도나 교회 그 누구를 통해서도 그들에게 자녀들을 가르치라고 명령한 것이 단 한번도 없다.

                반면 부모에게, 특히 아비에게, 말씀을 자식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다. 신명기 6:7, “네[부모]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라고 기록한다. 부모 대신 교회가 자녀의 구원과 신앙을 책임지는 주일학교 같은 개념은 성경 가르침에 어긋난다. 성경 에베소서 6:4에도 교회가 아닌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명령한다. 자식의 신앙교육은 부모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다. 부모가 자식의 눈치를 보게 되는 현상은 바른 길로 가며 바른 삶을 살도록 어릴 적부터 교육하는 일을 안 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결과다. 건강하게 학교공부 잘 하며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잡는 것이 ‘교육의 전체’가 아니다. 어릴 적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부모에게 교육받지 못한 자녀가 사춘기가 되어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자연스런 열매다. 이런 자녀는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간섭으로 받게 된다. 원하는 대로 살아온 습관이 자식의 성격이고 인격이 돼버린다.

                이런 면에서, 교회 또한 교육실패의 공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2세 자녀교육을 책임지는 우리 OO교회” “당신의 자녀를 우리 교회에 맡기십시오” 같은 교회 표어가 유행처럼 범람하는 시대다. 부모의 역할과 책임을 교회가 대신 지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대신 질 수 있는 줄로 교회가 착각하고 있다. 어느 자녀든 교회는 부모를 대신 할 수 없다. 성경적인 모델은 이제 ‘부모가 주도하고, 교회는 지도하는 신앙교육’이 되어야 한다. 이제 부모는 자녀교육의 기본 도리와 책임을 회복하고, 교회는 자녀교육이 아니라 부모교육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자녀를 ‘교육하는 것[educate]’은 단순히 ‘키우는 것[raise up]’이 아니다. 학교선생에게 맡기고, 과외선생에게 맡기고, TV와 영화와 대중문화 영향 아래 방치하고, 신앙과 인생문제는 교회에 떠맡기고.... 진정 내 아들 내 딸을 교육하는 그 부모는 어디 있는가? 어느 교회에 가면 교육 프로그램이 좋은가? 좋은 학군, 좋은 학원, 유능한 과외선생은 어디 있는가? 이 같은 교육열은 지적[I.Q.] 성취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성을 좌우하는 인성교육[E.Q.]은 부모의 몫이요, 본분이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지성교육은 – 학교성적, 명문대 진학 –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가 앞선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나, 참 교육은 똑똑하면서 반듯한 아들, 우등생이면서 남을 배려하는 성품을 가진 딸, 성적보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자녀로 키우는 것이 아닐까? 자기의 이익보다 공익을 생각하며, 경쟁사회에서 앞서는 것보다 화목케 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이민가정과 이민교회가 풀어가야 할 차세대 교육의 첫 실마리는 자식 눈치 보며 끌려가는 부모가 아닌, 자식을 바른 길로 교육하고 이끄는 부모의 역할과 책임 회복에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