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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9-21 13:57
상원이네 가족 여행길에 무슨 일이 ?
 글쓴이 : 하니
조회 : 13,506  
제목 : 호텔비는 3천원입니다

 벌써 7년전,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던 때의 일이다.
“오십견이 오나보다”
그날도 팔이 아프셔 몹시 힘들어 하시던 시어머니는 주말에 유럽쪽으로 가족여행을 떠나게 될 것 같다는 나의 말에 금새 얼굴표정이 밝아지셨다. 유럽이란 곳을 가 본적이 없는 시어머니에게 유럽여행은 흥분제이자 진통제 역할 하기에 충분했던지,적어도 6개월 이상 치료를 꾸준히 해야 겨우 괜찮을 오십견 현상이 신기하게도 2-3일 지나자 바로 완쾌 되었다.
늘 그렇듯이 남편은 이번에도 휴가를 낼 수 없어 긴 여행을 함께 할 수 없었다. 여자 홀로 연로하신 시어머니, 그리고 어린 아이들 3명을 이끌고 가려니 준비하는 과정부터 스릴 넘치고, 분주하고, 흥분되었지만 한편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밤 새도록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 떠 올리며 필요한 물건들을 수첩에 꼼꼼히 메모 하고, 짐들을 챙겼다. 그리고 마침내 출발일 아침을 맞이하였다.
 나에게는 이 여행이 즐거움보다 고행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껏 세 아이들을 돌봐주신 시어머님과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계의 맛을 보여주고 싶었고, 반복적인 일상에서 잠시 탈피해서 엔돌핀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추억의 그림을 그리게 해 주고 싶었기에,나에게는 힘겨울 것이 뻔한 이 여행을 계획했던 이었다.    밤새 짐을 싸는 동안, 아침을 알리는 회색 빛 여명이 거실 창가 커튼 사이로 살포시 들어왔다. 커튼을 살짝 걷어 보았다. 어느새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게 함박눈이 밤새 내려 세상을 하얗게 덮어 놓았다.
좀  불안했지만 ‘기온이 많이 내려가지 않아서 비행기 출발에는 문제 없겠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가족들을 깨웠다. 아이들 돌보느라 늘 힘드셨던지 저녁에면 골아 떨어지셨던 시어머니도 어제는 밤새 설레여 잠을 설치셨는지 얼굴이 부석부석 했다, 하지만 눈동자만큼은 어린 아이처럼 반짝이셨다.
" 애미야~ 오늘 비행기는 잘 뜨겠지?" 
" 네, 어머니. 눈이 왔어도 날씨가 이렇게 따뜻해서 해만 나오면 눈이 다 녹을 거라 문제 없을 거예요"
 걱정하시는 어머니 마음을 달래드리며, 돌아서서 혼자 미소 지었다. 늦은 결혼과  출산에 연년생으로 줄줄이 세 아이들을 낳아 키우다 보니, 그 동안 여행은 생각할 수 없었다.
'자주 모시고 다녀야지..저렇게 좋아하시는 것을.'
 시어머니께서 기뻐하시는 모습과 여행 중 감탄하실 모습을 상상하니 무엇보다 더 기뻤다.짐이 많은 탓에 나는 시어머니와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각자 감당할만한 가방을 하나씩 들게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우리의 씩씩하고 용감한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무사히 출국수속이 완료 되었고 , 우리가족 5명은 게이트 앞에 앉아 탑승하기를 기다렸다. 탑승시작 안내방송을 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4시간 지연출발 안내방송을 했다. 디아이싱(활주로에 덮인 눈을 치우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 눈앞에 캄캄했다.  프랑스를 경유하여 지인이 살고 있는 독일로 비행기를 갈아 타야 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려 억지로 마음을 달랬다.
' 그래, 변수는 여행의 기본이야, 모두 받아들이고 순간순간 계획을 새로 짜는 거다'
우리는 회사(항공사)에서 지급하는 식사쿠폰을 받아서 탑승 게이트 부근에 있는 식당에서 메뉴를 정하고 주문한 후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테이블 맞은편에 백발 외국인 노신사가 다가 와서 , 동석해도 되냐고 양해를 구해왔다. 탑승지연으로 많은 승객들로 식당이 붐볐던 것이었다.
백발외국인노신사 또한 식사주문을 했다. 그런데 주문 받던 식당 종업원이 지급된 쿠폰금액보다 삼천 원이 초과되었으니 추가로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노신사 얼굴에 갑자기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나는 얼른 지갑에서 삼천 원을 꺼내 식당 종업원에게 지불했다. 그렇게 한 데에는 우선, 내가 대한항공 직원이기에 비록 기상으로 인한 이유이지만 비행기 지연에 대한 직원으로서의 미안한 마음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고,또 하나는 그가 출국 수속을 완료하고 라운지로 들어와있던 터라 남은 한국 돈을 모두 환전하고 원화가 없을 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부터 그 노신사는 우리의 일행이 되었다. 백발외국인노신사, 시어머니, 비슷한 또래의 유치원생 아이들 셋과 젊은 엄마로 구성된 우리 일행은 어찌 보면 남 들에게 이상하게 여겨지기에 충분한 가족 구성원이었다.
나는 백발노신사에게 프레스티지 좌석을 가지고 있으니 편안한 라운지에서 기다리시면 된다고 안내를 해주었지만 그는 우리일행과 같이 하기를 원했다.    결국 나는 대한한공 직원임을 밝혔다.시어머니와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눈으로 인사를 하고 웃음으로 대화를 대신했다.그가 아이들과도 즐겁게 놀아주어 4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우리가 프랑스파리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독일로 가야 하는 것처럼, 백발노신사 또한 파리에서 영국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비행기내 프레스티지 좌석의 노신사는 가끔 우리아이들을 보러 일반석으로 왔다. 몇 번이나 괜찮느냐며 우리의 근황을 물어주는 노신사가 마치 우리 여행을 책임진 가족의 리더처럼 느껴졌다.
긴 비행 끝에 비행기는 무사히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비행기 지연출발로 인하여 예정보다 늦게 도착하게 되어 타기로 되어 있던 독일행 연결 편은 이미 출발하고 없었다. 노신사도 마찬가지 처지였다. 우리 모두는 파리에서 하루 밤을 지내야 했다. 4~5시간만 공항에서 기다리면 독일행 첫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순간, 노신사는 내가 대한항공 직원이라는 것과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해외로 나오니 애국심과 애사심이 강하게 발동하여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대한항공 직원으로서의 자존심이랄까 묘한 심리가 작용했던 것 같다. 그 당시 공항근처에는 다소 비싼 호텔비를 아끼기 위해 중국인이나 동남아 국민인듯한 많은 동양인들이 노숙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 노숙하는 모습을 그 백발 노신사에게 보이기 싫었다.
직원항공권 소유자는 호텔이 제공되지 않았지만 일단 호텔에 가기로 결심하고, 노신사와 같이 우리 일행은 호텔셔틀버스를 타고 흔히 알고 있는 유명호텔 앞에서 노신사와 같이 내렸다.
호텔 체크인 카운터 앞에서 승객들은 방을 배정받기 시작했고, 노신사도 우리 일행 앞에 줄을 서서 방을 배정 받았다. 연이어 우리의 순서가 되자, 호텔 직원은 이미 우리의 방이 배정되었다며 키를 건내 주었다. 백발 노신사가  우리 일행은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 일행의 호텔 비용을 대신 지불했던 것이다.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영수증을 주면 은행구좌에 입금을 하겠다며 이미 지불한 영수증을 달라고 했다.
" 호텔비용은 3천원이었어요 . 그러니까 출발공항 식당에서 대신 지불한 금액과 같으니까 우리는 서로 갚았어요"
 노신사는 막무가내였고, 우리를 이끌고 방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는 첫 비행기를 타려면 몇 시간 남지 않았으니 짐을 풀고 , 편안히 같이 파리 시내 야경을 구경 하자고 제안했다. 우리 일행은 생각지도 않게 파리의 잔잔하고도 화려한 품에 안길 수 있었다.
 멀리서 거만하고, 자신 있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화려한 불빛을 내뿜는 에펠탑이 보였다. 그리고 영화에서나 봤을 듯한 조그맣고 고딕한 그림 같은 분위기의 카페에서 맛있는  숩으로  우리의 몸을 따스하게 녹혔다.
오븐에서 금방 나온 손잡이가 두 개인 하얀색 사기그릇에 담긴, 갈색빛으로  녹아내린  고소한 치즈와 그 밑에 숨어 있는 따끈따끈한 어니언 숩은 지금도 뇌리에 남아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다.
헤어지면서 나는 그 노신사에게 무엇을 선물해야 할 지 고민하다가, 독일에 살고 있는 지인을 위해 준비한 김뭉치 한 다발을 꺼내 주며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노신사는 나의 갑작스런 선물에 아주 기뻐하고, 감사해 하며 소중히 받았다. 나중에야 유럽인들은 김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의 어이없는 선물에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몇 해 동안 연락을 주고받으며 소식도 전하고 했지만, 지금은 내 마음속에만 남아있다. 이렇듯 여행의 묘미는 예견되지 않는 스릴과 낯선 이들과의 소중한 인연이 만들어가는 색다른 추억에 있지 않은가 싶다. 순간순간 스쳐가는 낯선 만남 속에서도 진정한 마음과 순리에 따라 행동한다면 말이 통하지 않아도 진심이 통하는 마음의 지혜로 추억의 그림을 멋들어지게 그려 낼 수 있는 것 같다. 그 것이 여행의 참 맛이 아닐까?
지금도 우리 가족은 그 당시 유럽여행지에서 가족이 함께 그렸던 멋진 추억의 그림을 보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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